내가 지금보다 어렸을 적입니다. 학교에도 가기 전이었으니까요. 어느 날 누나와 형이 학교에서 만든 꽃을 한 송이씩 들고 왔습니다. 내일이 어버이날이라나요. 누나와 형은 또 조그만 선물 꾸러미도 마련해 놓고 있었습니다. 내일 아침 꽃과 함께 엄마 아빠께 드릴 거라고 했습니다. 그날 밤, 나도 꽃을 만들었습니다. 누나가 쓰던 색종이를 오려서 만든 꽃은 보기에는 누나나 형 것만은 훨씬 못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정성들여 만든 것이기 때문에 엄마 아빠가 신통해하실 것을 믿고 가슴이 잔뜩 부풀어 있었습니다. 선물은 장만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학교를 들어가기 전이라 용돈이 없었으니까, 그것 때문에 엄마 아빠가 섭섭해할 리는 없었습니다.
놀이에 싫증도 나고 배도 고프기에 집에 들어와 냉장고를 열려다 말고 나는 내 꽃을 보았습니다. 내 꽃은 식당 구석에 있는 쓰레기통 속에 과일 껍질과 밥찌꺼기와 함께 버려져 있었습니다. 그때 엄마는 거실에서 전화를 걸고 있었습니다.
오래간만에 소식을 알게 된 친구로부터의 전화인가 봅니다. 아이는 몇이나 되나, 친구가 물어본 모양입니다. 엄마는 한숨을 쉬면서 대답했습니다. “글쎄 셋이란다. 창피해 죽겠지 뭐니. 우리 동창이나 우리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을 아무리 살펴봐도 하나 아니면 둘이지, 셋씩 낳은 사람은 하나도 없더구나. 창피해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단다. 어쩌다 군더더기로 막내를 하나 더 낳아 가지고 이 고생인지. 막내만 아니면 내가 지금쯤 얼마나 홀가분하겠니. 막내만 아니면 내가 남부러울 게 뭐가 있니?” 그때 나는 처음으로 엄마에게 내가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나에게는 나의 가족이 필요한데, 나의 가족은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슬픔이었습니다.
엄마는 늘 나를 ‘막내, 우리 귀여운 막내.’ 하면서 끼고돌았기 때문에 나는 한 번도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의심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엄마의 사랑은 거짓이었습니다. 나는 엄마를 진짜로 사랑했는데, 엄마는 나를 거짓으로 사랑했던 것입니다.
나는 말없이 집을 나왔습니다. 계단을 오르고 또 올랐습니다. 마침내 옥상까지 올랐습니다. 옥상에서 내려다보니까 사람들이 개미처럼 작게 보였습니다. 나는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확실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가 없어져 주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는데, 무슨 재미로 살아가겠습니까? 나는 옥상에서 떨어지기 위해 밤이 되길 기다렸습니다. 낮에 떨어지면 사람들이 금방 보게 되고 병원에 데리고 가서 살려 놓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나는 정말로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밤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밤을 기다리는 동안 춥지도, 배고프지도 않았습니다. 아파트 광장에 차와 사람의 움직임이 멎자 둥근 달이 하늘 한가운데 와서 옥상을 대낮같이 비춰 주었습니다. 마치 세상에 달과 나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때 나는 민들레꽃을 보았습니다. 옥상은 시멘트로 빤빤하게 발라 놓아 흙이라곤 없습니다. 그런데도 한 송이의 민들레꽃이 노랗게 피어 있었습니다. 봄에 엄마 아빠와 함께 야외로 놀러 갔을 때 본 민들레꽃보다 훨씬 작아 꼭 내 양복의 단추만 했습니다만 그것은 틀림없는 민들레꽃이었습니다.
도시로 부는 바람을 탄 민들레 씨앗들은 모두 시멘트로 포장한 딱딱한 땅을 만나 싹트지 못하고 죽어 버렸으련만, 단 하나의 민들레 씨앗은 옹색하나마 흙을 만난 것입니다. 흙이랄 것도 없는 한 줌의 먼지에 허겁지겁 뿌리를 내리고 눈물겹도록 노랗게 핀 민들레꽃을 보자 나는 갑자기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고 싶지 않아 하던 것이 큰 잘못같이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통해 나는 사람은 언제 살고 싶지 않아지는가를 알게 된 것입니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가 없어져 줬으면 할 때 살고 싶지 않아집니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가족들도 말이나 눈치로 할머니가 안 계셨으면 하고 바랐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살고 싶지 않아 베란다나 옥상에서 떨어지려고 할 때 그것을 막아 주는 것은 쇠창살이 아니라 민들레꽃이라는 것도 틀림없습니다. 그것도 내가 겪어서 알고 있는 일이니까요. 그러나 어른들은 끝내 나에게 그 말을 할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오리다剪
꾸러미行李包 군더더기累赘 멎자停止 대낮白天 단추纽扣 줌一把 허겁지겁하다仓皇地 눈물겹다催人泪下 베란다 veranda阳台 쇠창살铁窗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