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단어 러더rudder는 배의 방향을 결정하는 장치인 ‘키’를 가리킨다. 그럼 러덜리스rudderless는 무슨 뜻일까. 맞다. 방향키가 망가진 배처럼 갈팡질팡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러덜리스’라는 영화도 있다. 삶의 방향을 잃고 표류하는 중년 남자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광고기획자 샘은 총기사고로 아들을 잃은 뒤 직장을 박차고 나와 요트에서 은둔생활을 이어간다. 항해 도중 선원을 모두 잃고 폭풍우 속에서 홀로 표류하는 난파선의 선장처럼 살아간다.
그는 매일 밤 눈꺼풀을 들어 올리지 못할 때까지 자신의 몸을 술로 가득 채운다. 마치 제 머리와 가슴에 고여 있는 아들을 향한 그리움과 죄책감을 모두 씻어내겠다는 듯….
샘은 삶의 의미를 되찾고 인생의 방향키를 바로 세울 수 있을까? 흠, 그건 상상에 맡기고 싶다.
영화를 본 뒤 나는 깊은 감동에 빠지지는 않았지만, 생처럼 죄책감의 바다에 깊숙이 빠져 허우적거렸던 기억을 잠시 떠올렸다.
기억을 더듬어 시간을 거꾸로 돌려 봤다. 한때는 어깨를 짓누르는 책임감이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었고 그때마다 난 “내 탓이야”라며 혹독하게 스스로를 책망했다. 죄책감의 바다에서 표류했다.
수렁에서 아들을 건져준 건 어머니였다. 내가 지면을 할애해 어머니 이야기를 구구하게 언급하는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다. 어머니가 내겐 예인선이었다.
영화 이야기로 시작했으니 영화 이야기로 끝맺으련다. (내가) 뭍으로 예인될 즈음 ‘굿 윌 헌팅’이란 영화를 보았다.
타고난 광대였던 로빈 윌리엄스가 숀 맥과이어라는 심리학 교수로 나온다. 숀 교수는 유년 시절의 상처로 방황하는 수학 천재 윌의 마음을 열기 위해 애쓴다. 숀은 자책과 분노로 똘똘 뭉친 윌을 어루만지며 위로한다.
“네 잘못이 아니야 It’s not your fault.”
이는 숀이 들려주고 싶었던 유일한 문장인 동시에 윌이 듣고 싶어 한 유일한 문장이었다. 윌은 숀의 품에 안겨 펑펑 눈물을 쏟아낸다.
우울한 사람의 마음을 가장 많이 위로한 사람도 우울증으로 세상을 등질 수도 있다는 것, 인생의 바다에선 누구나 한 번쯤 길을 잃는다는 것, 그리고 우리 주변에는 어쩌면 수많은 윌이 존재할지 모른다는 것. 뭐, 어쩌면 우리 모두일 수도 있을 테고.
가끔 삶이 버겁거나 내가 느끼는 죄책감이 비겁함으로 둔갑하려는 순간마다 나는 숀 교수가 들려준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문장을 소리 내어 읽곤 한다.
그러면서 하릴없이 되뇐다.
살면서 내가 용서해야 하는 대상은 ‘남’이 아니라 ‘나’인지 모른다.
우린 늘,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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兔兔的小书屋 回复 @木夏友人: 目前只有一小部分有哦,正在慢慢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