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 적엔 성공 시대 라는 TV 프로그렘이 있었다. 성공한 사람들의 일대기를 보여주는 방송이었는데. 매주 인물이 바뀌지만 이야기의 서술은 언제나 동일했다. 과거의 비참한 현실과 현재의 성공을 대비시키고 엄청난 노력과 불굴의 의지가 그 간격을 메운다. 그걸 보고 있노라면, 아무리 힘든 환경이라도 노력으로 극복하고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른이 되어 생각해보니 그건 능력주의의 시작이었다. 개인의 능력과 '노오력'만 있으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자기계발서 같은 이야기.
하지만 현실에서 능력과 노력은 성공의 마스터키가 아닌 여러 요인 중 하나일 뿐이다. 게다가 과거에 그러한 성공 신화가 가능했던건, 그때는 한국이 고성장 시기였고, 다들 지지리 못살아서 개인 간 자본의 차이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개인이 계층을 이동할 기회를 찾기 어렵고 공정한 능력주의의 전제 조건인 '기회의 평등'은 지켜지지 않은 채 부모의 자산, 배경, 계층의 이어달리기가 진행 중이다. 물론 노력이 경시될 수는 없으나, 운과 환경과 같은 비능력적인 요소가 많은 것을 좌우하고, 노력만으로 큰 성공을 거둔 이가 있다 해도, 소수의 예외가 전체를 대변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노력=능력=성공]이라는 등식은 [게으름=무능=가난]이라는 등식으로 자동 연산되어서 가난의 이유를 노력이 부족한 개인의 탓으로 돌리고 차별과 계급을 정당화한다. 무한한 기회가 열려있는데도 가난한 것은 너의 탓이니 억울하면 출세하라고, 그래서 사람들은 가난하면 쪽팔리다. 그러니 가난해 보이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히말라야를 등반하는 것도 아닌데 학교엔 노스페이스나 K2쯤은 입고 가야 가오가 살고 부녀회에선 비싼 아파트처럼 보이기 위해 아파트 이름을 영어로 바꿔야 한다는 촌극을 벌인다.
기회가 평등하지 않는 한, 능력주의는 허구일 수밖에 없음에도 성공시대와 자기계발서가 심어놓은 왜곡된 능력주의는 우리를 부자인가 아닌가 하는 결과값에 맞춰 우쭐함과 부끄러움 사이 어딘가에 놓이게 했다.
하지만 막상 주변을 두러보면 그저 운이 좋아서 혹은 상속받은 자본으로 부를 이룬 부자가 한둘이가. 가난하지만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온 이웃이 한둘인가.
과정은 스킵한 채 편법을 저지르고 약자를 착취해도 돈이 많은 부자는 당당하고,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았어도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이 부끄럽다면 그건 이상한 일이 아닐까.
가난하다 해도 삶에 최선을 다했고 떳떳하게 살아왔다면 그 삶에 자긍심과 자부심을 느껴야 한다.
哈哈😄美女老师好!我在听你的语音课程!😄🍵
肖小树_ 回复 @听友240500010: 太勤劳了哈哈哈